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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개인전 - 한글조형의 미



박명호 개인전

<한글조형의 미>



2022. 3. 9. - 3. 15.

제1전시실

















평론

- 김윤섭 (미술평론가)

자음과 모음, 조형의 예술과 만나다.

박명호는 이름난 캘리그라피(Calligraphy) 작가이며 서양화가이다. 선덕여왕, 아마존의 눈물, 신돈, 분홍립스틱, 아프리카의 사자, 아프리카의 눈물 등 누구나 알만한 방송 타이틀이 그의 작품이다. 수많은 인기 드라마가 그의 붓 끝으로 시청자와 처음 만난 셈이다.

보통 글씨와 그림이 다른 점은 그 내용의 전달 방식에 있다. 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글씨라면, 단번에 함축적으로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이 그림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소리 문자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문자를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서체를 가지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문자이기도 하다. 인간의 최초의 그림은 긋다, 그리다, 말하다 그것이 곧 문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문자라는 특성의 순수회화만의 조형성이란 예로운 예술이 탄생한 기념비적인 전시다. 특히 이번 전시는 한글의 기본 자음만을 가지고 조형적 구성을 예술로 구성했다는데 큰 의미를 가지겠다.

그동안 세종대왕의 뜻을 받들어 한글 꼴 디자인의 명맥을 이어가는 폰트디자인은 많았다. 그러나 박명호 작가처럼 평면 회화 장르에서 한글 자음 모음만을 가지고 페인팅을 작품화하여 선보인 경우는 처음이다.

박명호는 1985년 방송미술계에 입사한 이후 줄곧 먹과 붓만으로 25년을 살았다. 그것도 그 창의적인 붓놀림의 결과가 얼마나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 극복했다. 오늘의 작품이 결코 일순간에 완성된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먹의 향기, 붓의 효과, 터치의 효과, 한글의 조형성, 한글자음의 조형미 등에 심취해온 지난 세월의 공력을 함축해낸 결과물이 바로 이번 개인전의 작품들이다. 한글이라는 소재에 걸맞게 화면의 조형성 역시 한국적인 맛과 멋이 충분히 배어 있다. 전통적인 한국화의 백미인 ‘여백의 미’를 접목한 작업형식이 무척 매력적이다. 단편적으로 보자면 서양의 원색적인 배경에 한민족의 얼과 혼이 담긴 한글이 덧대어져 새로운 조형미로 승화시켰다는 느낌이다. 좀 더 넓은 시야로 박명호의 작품을 살펴보면 지극히 색감부터 구성에 이르기까지 한국적임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메인 칼라를 아크릴 물감으로 표현했지만, 전체 작품의 다양한 색의 변주는 전통 오방색의 범위를 조형적으로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간결, 절제, 고요, 단순 등 ‘여백의 미’를 극대화된 느낌의 작품구성이다. 마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꾸민 젠 스타일의 집을 보는 듯하다. 붓질의 반복과 중복, 붓의 갈필 효과 등은 박명호 작품만의 특징인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과 미니멀리즘의 중간미’를 잘 보여준다.

결국 박명호의 작품은 한글의 자음을 조형적으로 구성한 순수회화이다.

화면의 정중앙 혹은 우측이나 좌측 등에 자음을 반복적으로 크기를 조절하며 배치하였다.

이처럼 광활한 대형화면에 시원하고 쾌활하게 지나간 붓질 흔적의 드로잉은 한글 텍스트 이미지를 회화적인 조형미로 끌어 올리고 있다.

더욱이 조용했던 수면 위를 빗자루로 빠르게 훑고 지나간 듯 남겨진 ‘검은 흔적들’은 화면의 긴장감과 생동감을 동시에 자아낸다.

드로잉적 요소의 ‘검은 선’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흐름 속에서 형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한 숨 한 숨 필흔이 교차하면서 정해진 공간에 집의 골격을 세워나가는 듯하다.

진정 보이는 공간이 다가 아니라, 어느 순간 불현듯 보이지 않는 공간까지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런 점이 박명호 한글 페인팅의 흡입력이다. 그렇게 공간에 남겨진 자유분방한 선들은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생명의 기운과 열정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선(線)은 반드시 처음과 끝이 있듯, 박명호의 붓끝도 시간의 공간 속을 오고 가는 일필(一筆)일획(一劃)마다 자신만의 집을 완성할 기둥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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