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철 개인전 <The Moments>
2023. 4. 19. - 5. 2.
제2전시실
작가노트
아주 짧은 순간을 의미하는 찰나의 신 ‘카이로스’ 는 뒷머리에 머리카락이 없어서 한번 놓친 시간이 그렇듯이 아무도 그를 잡을 수가 없다. 틱닛한은 “현재를 놓치지 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항상 깨어 있으라는 가르침을 주었는데, ‘깨어있음’ 이 카이로스가 잡히는 순간일 듯 하다.
나는 깨어있는 의식으로 한송이 장미의 그 순간을 포착하여 이미 현실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사실’ 에 숨겨져 있는 그 찰나를 나의 시각적 언어로 캐내 형태를 충실히 부여했다. 장미를 그리지만 장미를 그리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를 그리는 것이다.
아름다운 자태의 찰나와 그 찰나를 지나고 또 다른 찰나를 만난 마른꽃잎, 아픈 찰나를 극복한 상처, 아직도 남아있는 마음의 구겨짐, 그리고 현존하지 않는 관념적인 색상과 진정한 경이로움을 만나기 위해 많은 레이어를 반복적으로 캔버스에쌓아 올렸다.
.하이데거는 우리 삶이 충만해지기 위해서는 자연과 사물 등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경이와 기쁨을 느끼는 인간 고유의 감정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존재하는 대상을 하이데거는 '존재자'라고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금빛도 장미도 존재자이다.
일반적인 관점으로 보는 장미가 아니라 존재해 있는 장미 한송이 그 자체를 본다. 존재의 관점으로 보는 것은 장미를 사물이 아니라 장미라는 존재로 인정한다면 장미의 독자성과 고귀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 찰나를 발견하기 위하여 다르게 생각하기. 낯설게 생각하기를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항상 접근한다
하이데거의 존재, 존재자, 존재물음의 시선으로 장미를 바라보게 되면 일상에서 바라보고 매일 경험하고 있는 피었다 지는 장미는 어쩌면 날마다 새롭게 존재하고 있는 ‘찰나’ 들의 연속체가 아닐까? 그런 의미 에서 어느 사진작가가 “기적을 찍으려 했으나, 지나고 보니 매일매일이 기적 이였다” 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가 우리의 존재를 느낄 때는 우리의 삶과 익숙하지 않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주어졌을 때가 아닐까? 나는 의도적으로 익숙치 않은 낯선 시각으로 장미에서의 경이를 느끼려고 제일 화려했을 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그린다. 장미는 그 찰나 속에서 자기 색을 다 소진한 이후 일상 속에서의 ‘시듦’을 시작하겠지. 그러나 아마도 그 ‘시듦’ 에서도 수많은 경이로운 찰나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기분은 하이데거가 말한 기쁨의 ‘경이’라는 기분으로 전환되고 다른 존재자들은 물론 시들기 전 지금 이 순간…
장미 한 송이에서의 경이로움을 발견했을 때 존재자로서의 우리 자신도 경이로울 것일 것이다.
그림의 다른 얼굴은 아우라 이다. 가시 없는 장미는 진정한 장미가 될 수 없듯이 아우라가 느껴지지 않는 그림은 얼굴 없는 그림이다라는 것이 나의 오래된 철칙이다.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아우라 가운데 가장 원초적인 것이 아름다움 일 것 이다라고 간주하여 한송이 장미에 집중하였다. 수천종의 장미 하나하나 다 다른 찰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제일 화려한 순간. 시들기 직전 그 찰나를 포척했다. 우리의 삶에서 그런 때가 언제인가? 그 순간을 의식할 때가 즉, 시간 위에서 깨어있는 그 때가 매 순간 순간이 우리의 화양연화가 아닐까? 사과 속의 씨앗은 보이지 않는 과수원이란 웨일즈지방의 속담이 있는데, 한송이 장미꽃에 속에서 피지 못하고 지는 수 많은 잎들은 아마도 우리의 보이지 않는 소중한 찰나들이 아닐까?
하이데거는 일상에서의 경이를 느끼는 것이 나의 존재를 느끼고 인정하고 그 소중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장미의 이 찰나 속에서 경이로움을 만나가 위해 수행하는 자세로 계속 레이어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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