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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서 개인전 - 스스로 살아숨쉬는 젖은 땅




스스로 살아 숨쉬는 젖은 땅

김경서 전

The 2nd Kim, Kyoung-Seo Solo Exhibitions

2023. 10. 4. ~ 10. 10.


토포하우스


습지를 찾다

습지는 흙이 물과 만나 빚어낸 젖은 땅이다. 흙이 물을 만나 고이면서 온갖 생명을 잉태한다. 보랏빛 가시연꽃과 노란 개구리밥이 잔잔하게 수면을 덮고 있고 왜가리며 두루미가 한가로이 날갯짓한다. 온갖 벌레울음이 서로 화답하며 일순 비현실적 상상에 젖게 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다가서서 들여다보면 습지는 혼탁하다. 어둡고, 깊고, 질퍽하다. 물과 흙이 뒤엉키며 수시로 서로의 경계를 허문다. 어디까지가 뭍이고 어디까지가 물인지 불확실하다. 돌 하나만 들추어도 스멀거리는 벌레들이 그득하다. 하물며 저 불투명한 심연 어딘가에는 지구의 역사 이래 밝혀지지 않은 괴생물체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순


간 섬찟한 느낌, 선뜻 다가갈 수 없는 두려움 같은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맑은 물, 흐르는 물을 좋아한다. 기실 그 이유는 깨끗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시선으로 투명하게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맑은 물은 다양한 생명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

두 해전 60을 훌쩍 넘어가진 첫 개인전에서 나는 내가 평생을 살아온 동네 불광천을 그렸다. 마른 잡풀들이 어석어석 서로의 몸을 부대끼는 겨울 불광천을 차갑게 묘사했다. 처음부터 작정한 주제는 아니었다. 매일 소요하던 불광천이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었다. 나이 때문일까. 그림을 그릴수록 그 어떤 이념이나 동시대적 미학이 쉽게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간다. 도회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얕고 평범한 천변이지만 온갖 생명의 움틀임이 나를 자꾸 부추겼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했다. 겨울 불광천이 그림을 그리지 못했던 나의 청년기와 장년기의 긴 공백을 연상케 하는 바가 있었다면 이제 새로 시작하는 그림은 봄이나 여름이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십여 년의 세월을 교사로 지낸 내게 정년퇴직은 자유로운 여행의 시간을 허락했다. 전국의 습지를 찾기로 했다. 기왕이면 람사르에 등록된 습지를 우선하여 책을 읽고 찾아다녔다. 람사르 1호인 강원도 인제의 용늪에서 마지막 24호인 일산의 장항습지까지 대략 반 정도는 다녀온 것 같다. 각각의 습지에는 지형적, 발생학적, 생물학적 특성도 다양했지만, 무엇보다 제각각의 사회적, 역사적 서사들을 품고 있어 애틋했다. 인간의 관여가 만들어낸 슬프거나 기특한 이야기들은 그 자체가 이미 자연의 역사이기도 했다.

서울에도 람사르 습지가 하나 있다. 서강대교와 마포대교 사이에 걸쳐있는 밤섬이다. 우리가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를 오가며 무심코 지나치는 섬이다. 없는 듯 그곳에 늘 있어왔다. 그러나 이 섬이 람사르에 등록된 습지이며, 고려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아왔고, 1960년대에 인간에 의해 폭파된 섬이라는 슬픈 사연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밤섬은 원래 밤톨 모양의 바위가 솟아난 돌섬이었다. 1968년 모래섬이었던 여의도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밤섬은 폭파되었고, 당시 거주하던 62세대 594명은 강제 이주되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밤섬에 점차 퇴적토가 쌓이기 시작했고 떠내려온 씨앗에서 풀과 나무가 자라났다. 그리고 온갖 철새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인간의 무관심이 역설적으로 생명의 땅을 부활시킨 것이다. 출입이 제한된 밤섬에 나 같은 일반인이 들어가기에는 절차가 너무 까다로웠다. 하는 수 없이 서강대교를 서성이며 먼발치에서 사진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강원도 인제 대암산에 있는 용늪은 4000년 전에 형성된 해발 1,280m의 고층 습지다. 연중 5개월이나 영하에 머무는 저온 때문에 식물들의 사체가 썩지 않고 켜켜이 쌓여 이탄층을 형성하고 그 위로 빗물이 고이며 생긴 습지다. 산정 높이 분화구처럼 펼쳐진 용늪은 그래서 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평지에서는 볼 수 없는 온갖 희귀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생태 보존지구로 지정된 터라 하루에 20명 제한으로 사전 허가를 받고 오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아주 오래 그들만의 생명의 시간을 견뎌온 산사초, 뚝사초, 이끼류, 그리고 한 번도 보지 못한 들꽃들이 짙은 안개의 습기를 헤치고 겨우 모습을 드러내다 사라지곤 했다. 늪의 깊은 곳에는 엄청난 양의 탄소가 머물고 있고, 그들이 내뿜는 생명의 기운으로 아직 지구는 견디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했다. 한갓 물웅덩이와 겨우 견디고 있는 풀 한 포기가 사라질 때 지구 전체가 요동친다는 걸 깨달았으면 했다. 자연의 신비로움은 오직 겸허한 인간의 내면만이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우포는 원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내륙 습지다. 신생대 빙하가 녹으며 거대한 웅덩이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물이 흘러들어 형성되었다. 우기나 홍수 때 과다한 수분을 습지 토양 속에 저장하였다가 건기에 지속해서 주변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코로나가 한창일 무렵 우포를 찾았다. 끝없이 펼쳐진 습지에는 자줏빛 가시연꽃과 노란 개구리밥, 부들과 창포가 빼곡히 덮여있다. 먼발치에서 두루미와 왜가리, 따오기, 그리고 이름 모를 새들이 유유히 서 있거나 푸덕거리며 날아오르곤 했다. 3일을 그곳에 머물며 태곳적부터 이어온 생명의 신비를 만끽했다. 제집을 빼앗기고 인간에게 기생할 수밖에 없었던 코로나 바이러스도 이곳에 오면 늪 속으로 스며들어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강화의 매화마름 습지는 원래 농경지였으나 멸종 위기의 매화마름을 보존하기 위해 시민단체와 주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조성되어 람사르에까지 지정된 사례로 의미가 깊다. 반면 창원의 주남저수지는 넘치도록 완벽한 조건을 다 갖추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람사르에 등록되지 못하였다. 환경 문제는 자본의 논리와 인간의 욕망을 비껴갈 수 없음을 안타깝게 깨닫는다. 경기 북부의 DMZ와 임진강변은 여느 습지보다도 온전한 생태계를 갖춘 습지이다. 가장 풍요로운 다양성과 순환성이 숨쉬는 곳, 그러나 우린 가 닿을 수 없다.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른다.

습지를 그리다

내가 습지를 그리는 이유는 습지의 신산한 느낌과 내음과 소리가 좋아서이다. 스스로 살아 숨 쉬는 다양한 생명체들의 하모니가 아름답고 고마워서이다. 그 어떤 미적 이념과 감성보다 소중한 가치가 그 안에 담겨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라고 말해 놓고 보니 이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말인지를 깨닫는다. 저 습지의 심연이 ‘어떻게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작가는 언제나 제 시선으로 바라보고 제 방식대로 편집할 수밖에 없다. 내 안에서도 자연은 엄연히 작동한다. 들숨과 날숨, 피돌림으로부터 세포와 기관들의 조응, 그리고 욕망과 분노와 경탄의 감정들. 그것들 또한 알 수 없는 내 안의 자연이다. 그래서 습지의 생명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내 안의 자연이 함께 운율을 맞춰주어야 한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림의 연륜이 짧은 나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자꾸 다듬고 개칠을 한다. 습지의 생명감 있는 기운이 아니라 풀잎 하나의 형태에 자꾸 얽매인다.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생명 존재들의 화음을 놓치곤 한다. 늘 불만스럽다. 오래 창작해 온 작가들의 거침없는 필치가 부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항간의 미적 이념이나 독특한 방법론 따위의 주장들에 선뜻 동조할 수는 없다. 적어도 습지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그렇다. 불만스럽고 지난한 그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내 안의 자연이 스스로 그들과 호흡하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자꾸만 ‘대상의 재현’에 빠져든 듯한 내 작업이 종종 불안하고 불만스럽다. 하지만 이 재현적 이끌림이, 적어도 지금의 내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거스를 수 없는 내 안의 자연의 발로임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현대미술은 은연중 ‘재현(再現, representation)’을 ‘표현(表現, expression)’보다 낮은 등급의 창작 태도로 여긴다. 그 이유는 일단 ‘재현’을 대상에 대한 일차적이고 시각적인 유사성으로 제한하여 보기 때문이며, ‘재현’의 원본성을 객관화된 자연에 두기 때문이다. 타자로 전락한 자연에서 경외감을 느끼거나 진리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기실 재현과 표현은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며, 근대 이전에는 그 분리가 존재할 필요도 없었다. 재현은 ‘자연의 재현’이며, 표현은 ‘주관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연이 부재한 표현이 있을 수 있으며, 주관이 부재한 재현이 성립될 수 있을까. 자연은 모든 생명들이 조응하며 늘 변화할 뿐이다. 자연에 원본은 없으며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것은 오만일 뿐이다. 그래서 근대 이후의 미술은 자연을 알 수 없는 신화의 세계로 규정하고 작가의 주관적 인식과 감성을 앞세운다. 작가에게 ‘천재’ 또는 ‘독창성’의 작위를 부여한다. 온갖 실험을 통해 새로운 미적 개념을 쏟아내도록 한다. 경제 발전 지표가 1을 넘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신화는 붕괴한다고 한다. 이 신화는 체제의 지속을 위한 믿음의 체계이다. 인공지능과 우주산업, 그리고 유전자 공학에 대한 엄청난 투자는 새로운 문명과 인류의 행복을 위한 것이기에 앞서 체제의 붕괴를 피하기 위한 또 하나의 신화 창조일뿐이라는 해석들이 현대의 미술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모종의 문화적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음을 예견한다. 나아가 예술의 주체적 자율성 신화가 진행되어 오는 동안 지구의 환경도 급격히 훼손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단지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오랫동안 평론가의 이름으로 생태학과 자연 미학에 대한 글을 써왔다. 뒤늦게 이론을 접고 그림을 그린다. 뜻대로 되어줄 리 없다. 그림은 때로 내 생각을 거스르며 나를 이끌어 간다. 그럼에도 생태학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림 속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내 그림이 고리타분한 풍경화로 읽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림을 그리려면 그림 그리는 몸부터 만들라는 충고를 듣는다. 늦었지만 조금씩, 그 몸을 만들어 가야겠다.



김경서 金慶瑞

Kim, Kyung-Seo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홍익대와 동국대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서 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중학교 미술 교사와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다 뒤늦게 그림을 시작했다. 정년 후 2021년 4월 나무화랑에서 ‘불광천의 겨울나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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